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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바다 여행

등록일 2018년05월26일 10시38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더위를 피해 숨고 싶던 날. 젖은 모래를 밟고 바닷물에 발목을 적시는 장면을 상상했다. 순간 바다 생각이 간절해졌고, 물 위로 솟아오르며 힘차게 헤엄치는 고래가 보고 싶어졌다. 내친김에 먼 길을 달려 고래가 노닌다는 울산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짙푸른 바다가 주는 즐거움에 이끌려 이틀을 보냈다. 비록 고래는 오지 않았지만, 고슬고슬 그을린 몸에 새겨진 울산의 바다는 애타게 찾던 그 바다가 분명했다.

 

고래를 만나러 가는 길

울산에 도착해 맨 먼저 찾아간 곳은 장생포항. 크루즈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래를 만나는 고래바다여행선이 여기서 출발한다.
배표를 사고 출항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바로 옆 장생포 고래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은 이름처럼 고래에 대한 모든 것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길이 12.4m, 무게 14.6톤의 브라이드고래 골격에서부터, 고래수염, 턱뼈, 과거 고래 기름을 짤 때 사용한 대형 솥과 고래를 들어 올리던 밧줄에 이르기까지, 고래 관련 유물 280여 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고래잡이로 명성을 날리던 장생포항의 옛 모습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장생포는 30년 전만 해도 포경선 50척이 드나드는 고래잡이의 전진기지였다. 1986년 포경이 금지되면서 침체기를 맞았으나, 2005년 고래박물관이 들어서고 2008년 장생포가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되면서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박물관에서 나와 고래생태체험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태체험관은 박물관 왼쪽으로 보이는 건물인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돌고래 수족관을 갖춘 곳이다. 여기서는 길이 11m의 해저터널을 오가며 활기차게 유영하는 돌고래 가족을 만날 수 있다. 좀 더 활동적인 모습이 보고 싶다면 먹이 주는 시간을 놓치지 말길. 하루 3회(11시, 14시, 17시 / 월요일 휴관) 사육사가 수족관으로 들어가 먹이를 주는데, 돌고래의 귀여운 재롱을 덤으로 엿볼 수 있다. 단 안전한 관람을 위해 매회 인원을 선착순 100명으로 제한하므로 조금 서두르는 게 좋다.


 

돌고래 가족과 인사를 나누고는 고래바다여행선에 올랐다. 진짜 야생 고래를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장생포항을 떠난 배는 울기등대 동쪽 바다로 나갔다가 3시간 만에 돌아온다. 코스는 정해져 있지만 고래가 발견되면 고래를 따라 뱃머리를 돌리기도 한단다. 물론 배를 탄다고 무조건 고래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선장님은 수온이 올라가면 먹이를 찾아오는 고래를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 고래는 오지 않았다. 딱히 탓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고래가 야속했다. 근데 신기한 건, 고래 없이 3시간을 망망대해에서 보냈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는 거다. 생각해보니 울산대교와 조선소의 색다른 풍경에 셔터를 제법 눌렀고, 배 안에서 열린 다양한 공연이 분위기를 띄운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아쉬운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배에서 내리면서 ‘한 번 더 타볼까’ 욕심을 부렸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는 후다닥 고래문화마을로 향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따끈한 관광지이기도 했지만, 거기에 가면 왠지 아쉬움이 사그라질 것 같았다.

 


 

고래문화마을은 국내 유일의 고래 테마공원이다. 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에서는 걸어서 10분 거리로 한 번에 묶어 보기 좋다.
고래문화마을은 ‘장생포 옛 마을’과 ‘고래조각공원’ ‘고래광장’ ‘선사시대 고래마당’ ‘고래 만나는 길’ 등으로 조성됐다. 가장 먼저 눈길이 멈춘 곳은 1960~70년대 장생포 동네 풍경을 복원한 장생포 옛 마을이다. 마을 안에는 고래 연구에 매진했던 앤드루스 박사의 하숙집을 비롯해 선장과 포수의 집, 고래 해체장과 고래 기름 착유장, 고래 고기를 삶아 팔던 고래막 등 23개 건물이 실물 크기로 재현돼 있다. 또 시골학교, 책방, 구멍가게, 철공소, 연탄가게 등 그 당시 거리 풍경도 엿볼 수 있는데, 오래된 소품과 정감 어린 건물 분위기가 발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옛 마을에서 나와 고래광장 옆 조각공원으로 향했다. 장생포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탁 트인 시야가 매력적이었다. 공원 곳곳에는 귀신고래, 혹등고래, 밍크고래, 향고래, 범고래 등 실물 크기의 고래 모형이 설치돼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입구에서 입을 쫙 벌리고 있는 대왕고래였는데, 길이 20여 m의 뱃속을 통과하는 기분이 피노키오가 된 듯 꽤 묘했다.
조각공원을 벗어나 선사시대 고래마당으로 갔다. 고래잡이 벽화, 고래뼈 주거지 등을 통해 선사인의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포토존으로 조성된 고래 만나는 길을 따라 문화마을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해는 잦아들었고, 바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바다의 노래를 듣다

이튿날. 한동안 잊고 지내던 거제도 몽돌해변이 떠올랐다.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피아노곡 때문이었다. 모난 곳 없는 둥근 돌멩이가 차르르르르 바다를 굴리며 내던 소리가 한참 동안 이명처럼 귀에 맴돌았다.
그러고 보니 울산에도 몽돌해변이 있었다. 울산이 자랑하는 열두 가지 풍경 가운데 하나인 강동·주전 해안 자갈밭이다. 울산 출신 시인의 ‘콩알만 한 것부터 아기 주먹만 한 몽돌이 파도 자락에 쓸리며 천상의 소리를 낸다’는 글귀가 마음을 들뜨게 했다. 계획된 일정을 틀고 몽돌 밭에 가야 할까 순간 고민이 차올랐다.
하지만 결국 원래 가려던 슬도 방향으로 나섰다. 슬도는 어젯밤 책을 들여다보다 점 찍어둔 섬이다. 슬도. 슬도. 부를 때마다 바람 소리 감도는 이름이 좋았고, 무엇보다 ‘파도가 칠 때마다 거문고 타는 소리가 들린다’는 설명이 마음에 쏙 들었다.

 

슬도는 방어진항 앞바다의 작은 무인도다. 섬 전체가 구멍 뚫린 바위로 이뤄져 있는데 그 모양이 꼭 벌집처럼 보여 달달한 향이 날 것 같다. 누구는 달콤한 소보로빵을 떠올렸는지 ‘곰보섬’이라 부르기도 했다.
‘슬도’라는 이름 역시 바위 구멍과 관련이 깊다. 숭숭 뚫린 구멍 사이로 바닷물이 드나들면, 마치 거문고를 타듯 구슬픈 소리가 난다고 하여 거문고 ‘슬(瑟)’ 자를 쓴다. 울산에서는 이 소리를 두고 ‘슬도명파(瑟島鳴波)’라 부른다. 또 방어진의 아름다운 경관을 일컫는 ‘방어진 12경’ 가운데 하나로 꼽기도 했다.
섬은 방어진항에서 방파제로 연결되어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일부 구간은 방파제 대신 다리(슬도교)로 이어져 있는데 그 아래로는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다리 중간에는 11m 높이의 고래 조형물이 자리했다. 이 고래 조각은 울산 태화강 상류에 있는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라고 했다.
방파제를 걷기 시작한 지 1시간이 다 되서야 섬 입구에 도착했다. 원래는 방파제 입구에서 섬까지 10분이면 충분한데, 중간에 고동 잡는 아이들과 낄낄거리며 노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계단을 올라 섬으로 들어서니 하얀 등대가 먼저 반긴다. 1950년대에 세워진 이 무인등대는 마치 든든한 파수꾼처럼 섬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었다. 등대 아래 매달린 스피커에서는 슬도명파를 주제로 한 거문고 연주곡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섬에는 바다 쪽을 향해 놓인 벤치가 여러 개 있었다. 하나같이 ‘이리와 파도 소리를 들어봐’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눈에 봐도 탁 트인 바다를 담기에 좋은 자리였다. 차분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 왼쪽 구석 벤치로 골라 앉았다. 애초부터 섬 구경은 계획에 없었다. 울산으로 이끈 게 바다라면, 슬도로 오게 한 건 오직 파도 소리였다.
짐을 내려놓고 날아드는 바닷바람을 만끽했다. 이보다 아름다운 바다는 많이 봤지만 이렇게 제대로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 바위 구멍을 넘나드는 바닷물 소리, 섬을 휘감는 바람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스피커에서 흐르는 음악인지, 아니면 바위 구멍에서 나오는 소리인지 모르지만, 분명 거문고의 구슬픈 가락이 어딘가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불현듯, 파도가 고기를 몰고 온다는 말이 떠올랐다. 금세라도 먼바다에 나가 있던 고래가 헤엄쳐 올 것 같았다. 눈이 번쩍 뜨였다. 슬도교 위 새하얀 고래가 하늘로 솟아오를 듯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청사초롱 7+8호

글, 사진 : 청사초롱 박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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